저한테 아직 너무 어려운 카드 — 심볼론

지난 글에서는 정확도를 높이고 싶어서 산 레노먼드 이야기를 했잖아요. 오늘은 반대 이야기예요. 제가 욕심내서 샀다가 아직 제대로 펼쳐내지 못한 카드. 심볼론(Symbolon)이에요.

카드 박스만 낡은 심볼론 카드

제가 쓰는 덱은 독일 AGM-Urania 출판사에서 나온 영문판 심볼론이에요. 표지에 Peter Orban, Ingrid Zinnel, Thea Weller 세 분의 이름이 적혀 있고, 부제는 “The Deck of Remembrance”, 기억의 카드라는 뜻이에요. 카드는 총 78장이에요.

사실 이 덱은 박스가 조금 많이 낡아 있어요. 모서리가 닳고, 테이프 자국도 있고. 카드가 낡은 게 아니라 박스가 낡았다는 게 포인트예요. 그만큼 제가 이 덱을 오래 가지고는 있었는데, 제대로 써보지는 못하고 박스만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는 뜻이거든요.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낡은 박스를 다시 꺼내보면서였어요.

심리치료사이자 점성가가 만든 카드예요

Peter Orban은 독일의 심리치료사이자 점성가예요.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공부했고, 심리학 박사 학위도 있어요. 1970년대 후반부터 치료사로 활동했는데, 초기에는 태아기 기억이나 유년기 트라우마를 다루는 원초 치료(primal therapy) 쪽이었다고 해요. 1977년 두 번째 이혼 위기를 겪으면서 점성학을 만났고, 그때부터 융(C.G. Jung)의 원형과 그림자 개념을 배경으로 심리학과 점성학을 엮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1980년대 중반, Ingrid Zinnel과 함께 심볼론을 창안했고 1990년대 초에 처음 세상에 나왔어요. Peter Orban 선생님은 작년(2024년) 10월,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이 배경을 알고 카드를 보면 느낌이 달라져요. 이건 유행 타고 만든 오라클도 아니고, 신비주의로 포장한 덱도 아니에요. 독일 임상 심리치료사의 현장 경험에서 나온, 치료 도구에 가까운 카드예요. 그래서 이 덱은 미래를 점치는 용도가 아니에요. 잊어버린 자기 자신의 조각들을 다시 불러내는 도구라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에요. 과거 지향적이에요. 다른 덱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를 묻는다면, 이건 “당신 안에 지금 무엇이 살고 있나요?”를 묻는 쪽이에요.

78장인데, 타로가 아니에요

처음 이 카드를 알게 됐을 때 저도 헷갈렸어요. “78장? 그럼 타로네?” 싶었거든요. 타로 덱은 메이저 22장 + 마이너 56장 해서 78장이잖아요. 근데 심볼론은 78장인데 메이저 아르카나도 없고, 마이너도 없고, 슈트도 없고, 코트 카드도 없어요. 타로랑 숫자만 같지 구조는 완전히 달라요.

심볼론은 점성학 기반이에요. 황도 12사인(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각각에 해당하는 12장의 카드가 있고, 여기에 사인끼리 두 개씩 짝을 짓는 조합 카드들이 더해져요. 12사인끼리 두 개씩 짝짓는 경우의 수(12×11÷2 = 66장)에 원래의 12장을 더하면 78장이 돼요. 카드 한 장 한 장이 내 안의 어떤 에너지, 어떤 내면 인물을 상징해요. 저자들은 이걸 “내면의 페르소나(Inner Personae)”라고 불러요.

책에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해요. 순수하게 심리학적으로만 읽는 방법, 그리고 점성학을 결합해서 읽는 방법. 근데 현실은… 심리학적으로만 읽으려 해도 이게 결코 쉽지가 않더라고요.

카드 자체는 정말 좋아요

물리적인 감각으로 말하자면 이 카드는 제가 가진 덱 중에서도 손에 잘 감기는 편이에요. 크기가 딱 맞게 작아서 손에 착 감기고, 셔플도 잘 되고, 스프레드를 촤르륵 펼쳐 놓기에도 편해요. 지난번 문올로지 카드가 너무 커서 섞다가 떨어뜨리곤 했던 거랑 비교하면, 심볼론은 물리적으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덱이에요.

그림도 묘해요. 19세기 유럽 회화 같은 섬세한 일러스트인데, 동화책 삽화처럼 포근한 결은 아니에요. 역사적 장면과 신화적 모티프가 섞여 있고, 색감도 깊고 어두운 쪽이에요. 한 장 한 장이 조용히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앉아 있는 느낌이에요.

근데 상징 해석이 너무 어려워요

문제는 여기서 시작돼요. 이 카드를 한 장 뽑고 나서 제가 마주하는 건 해석의 벽이에요. 타로는 오래 공부한 상징 체계가 있어서 한 장을 뽑으면 제 안에서 여러 층의 의미가 자동으로 따라 올라와요. 오라클은 원래 직관적으로 읽도록 설계된 카드라서 그림과 키워드만 봐도 감이 와요. 레노먼드는 키워드 자체가 단순해서 조합만 익히면 읽을 수 있고요.

심볼론은 이 셋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요. 카드 한 장에 점성학 사인이 하나 또는 두 개가 결합되어 있는데, 그 사인 각각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사인끼리의 조합이 심리학적으로 어떤 인물을 만들어내는지도 읽어낼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양자리와 전갈자리가 결합된 카드라면, 양자리의 추진력과 전갈자리의 집요함이 한 인물 안에서 어떻게 긴장하고 어떻게 충돌하는지 읽어야 해요. 그게 그 장의 “내면 페르소나”거든요.

그래서 책도 샀어요. 『심볼론카드 상담전문가』 개정판이에요. 최지훤, 이미정 선생님 외 여러 공저자들이 함께 쓰신 하움출판사 책이고, 한국 타로&NLP 상담전문가협회에서 만든 실전 해설서예요. 큰맘 먹고 샀어요. 근데 펴봤을 때 저는 띠용 했어요. 제1편에 12사인, 10행성, 12하우스, 4원소, 3대 특질, 양극성, 그리스 신화 올림포스 12신이 기본으로 들어가 있거든요. 이게 “기초 점성학”이에요. 이걸 다 알아야 제2편의 카드 해석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저는 여기서 책을 덮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아, 이건 지금 내가 시작할 공부가 아니구나” 하고 알아차렸거든요. 점성학을 처음부터 제대로 공부해야 이 카드가 열리는 덱인데, 지금 제가 거기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어요. 그래서 책은 책장에, 카드는 박스에 넣어두고 “언젠가”라는 단어로 미뤄두었어요.

심지어 저는 점성학을 공부 했음에도 이 덱은 좀 어렵더라고요. 하. 무슨 상징이 이렇게 많아.

그래도 언젠가는 능숙하게 보고 싶어요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봤어요. 박스는 이렇게 낡았는데 왜 저는 이 덱을 아직도 서랍에 두고 있을까요. 그건 제가 이 덱이 가진 무게를 알아봤기 때문인 것 같아요.

Peter Orban 선생님이 심리치료사였다는 것, 이 카드가 융의 원형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 그리고 미래 예측이 아니라 “내 안에 잊혀진 부분을 다시 기억해내는 도구”라는 이 덱의 방향성. 이건 제가 해온 상담 방식이랑 결이 맞닿아 있어요. 지난 글에서 제가 “내담자가 인상이 펴진 얼굴로 돌아가시는 것”이 상담의 목표라고 말했는데, 심볼론은 거기에 닿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지금 당장은 아니에요. 지금 저는 타로를 더 깊게 파고, 레노먼드 조합을 익히고, 심리학 공부도 하고 있어서 여기에 에너지를 나눌 여유가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점성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되는 순간이 오면, 저는 이 낡은 박스를 다시 꺼낼 거예요. 그때가 되면 이 78장이 저에게 비로소 문을 열어줄 거라고 믿어요.

타로카드를 20년 넘게 해왔어도, 저한테 아직 너무 어려운 덱이 있어요. 저는 그게 부끄럽진 않더라고요. 오히려 저에게 “아직 열지 못한 문”이 있다는 사실이 좋아요. 상담사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계속 자라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심볼론 덱은 그래도 서랍장에 넣지 않고 제 책상 한켠을 차지하고 있어요. 진짜 언젠가는 멋있게 리딩을 해보고싶은 카드거든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네요.

본 글은 제가 개인적으로 구입한 덱과 도서에 대한 학습 중의 감상이며, 숙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개인적 경험 공유입니다. 특정 덱이나 도서의 구매를 권유하거나 제휴 링크를 포함하지 않으며, 본 글에서 언급한 심리학·점성학 관련 설명은 제 학습 범위 내의 이해이므로 해당 분야의 공식 정의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정신 건강 서비스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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