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용으로 좋은 타로카드 — Tarot Nefertari

지난 글에서는 예뻐서 샀는데 자주 쓰게 된 덱 이야기를 했잖아요. 오늘은 비슷한 시작인데 결말이 다른 덱 이야기예요. 같은 Lo Scarabeo, 같은 금박, 비슷한 가격대인데 저한테는 소장용으로 만족인 덱이 있어요. Tarot Nefertari예요.

이번에도 금박에 마음을 뺏겼어요

저는 솔직히 금박에 약해요. 인정합니다. 지난번 Golden Art Nouveau Tarot도 표지의 골드 포일에 끌려서 샀는데, Nefertari는 그것보다도 금박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간 덱이에요. 박스를 처음 열었을 때 카드 한 장 한 장이 거의 통으로 금빛이라 진짜 화려해요. “이집트 황금 시대”라는 단어가 카드에서 그대로 빛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아 또 이 덱은 자주 쓰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근데 결과는 달랐어요.

이 덱이 어떤 덱이냐면

출판사는 또 Lo Scarabeo예요. 이쯤 되니까 제 책장에 이 출판사 덱이 꽤 쌓였네요. 7편 레노먼드, 10편 Golden Art Nouveau, 그리고 이번 11편 Nefertari까지요. 이탈리아 토리노 기반 출판사인데 컬렉터 라인이 워낙 강해서 한 번 발을 들이면 계속 사게 돼요.

Tarot Nefertari는 일러스트레이터 Silvana Alasia가 그렸고, 텍스트는 Pietro Alligo와 함께 작업했어요. 처음 출시는 2000년이고,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건 2013년 개정판이에요. 78장 풀덱이고, 사이즈는 손에 잘 잡히는 편이에요. 다국어 인스트럭션이 동봉돼 있고요.

덱 이름의 주인공인 네페르타리(Nefertari)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왕비예요. 람세스 2세가 부인을 위해 지어준 무덤(QV66)이 지금까지도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을 정도로, 람세스가 끔찍이 사랑한 인물이에요. 고대 이집트에서 그녀는 “이집트의 빛(Light of Egypt)”으로 불렸어요. 이 덱은 그 이름에 걸맞게 카드 전체가 황금빛으로 빛나요.

그림이 좀 달라요

여기서부터가 제가 이 덱을 자주 못 쓰게 된 이유예요. 카드 구성 자체는 78장 웨이트 계열이긴 한데, 그림이 웨이트 덱이랑 꽤 달라요.

이집트 신화와 상형문자, 고대 벽화 양식을 그대로 가져왔거든요. The Fool 자리에 절벽 끝의 청년이 있는 게 아니라 이집트 의상을 입은 인물이 있고, Death 자리에는 자칼 머리를 한 아누비스 신이 있어요. Temperance에는 날개 펼친 여신이 있고요. 카드 곳곳에 상형문자가 빼곡하게 들어가 있어서, 이걸 제대로 읽으려면 이집트 신화와 상징 체계를 따로 공부해야 해요.

웨이트 구조는 알지만 이집트 상징은 잘 모르는 저 같은 사람한테는 이게 큰 벽이에요. 카드를 한 장 뽑아도 “이게 The Magician이긴 한데… 이 인물이 든 도구는 뭘 의미하는 거지?” 하고 멈추게 되거든요. 9편에서 제가 타로 상징은 외우는 게 아니라 친해지는 거라고 했잖아요. 그 말 그대로예요. 이 덱이랑 친해지려면 이집트라는 새로운 언어를 따로 배워야 해요.

그래서 솔직히 소장용이에요

Golden Art Nouveau는 그림이 무하 풍이긴 해도 구조와 상징이 웨이트 그대로라서 바로 읽혔어요. 근데 Nefertari는 그게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이 덱을 “언젠가 이집트 공부 본격적으로 하면 그때 꺼낼 덱”으로 분류해놨어요. 8편에서 심볼론을 “언젠가 점성학 공부하면 다시 꺼낼 덱”이라고 했던 거랑 비슷한 위치예요. 미뤄둔 덱이 또 한 장 늘어난 셈이에요.

근데 이상하게 이 덱은 미뤄둔 게 아쉽지가 않아요. 왜냐면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거든요. 박스에서 꺼내서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이집트 박물관 한 켠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어요. 카드를 펼치지 않고 그냥 쌓아만 놓아도 금빛이 손끝에서 따뜻하게 빛나요. 이런 덱은 “사용 빈도”로만 평가하면 손해예요. 보관 자체가 즐거움인 덱이거든요. (하지만 잘 쓰시는 분들은 또 잘 써요)

아르누보보다 눈은 덜 아파요

그리고 재밌는 게 하나 있어요. 금박이 이 덱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 있는데, 이상하게 눈은 덜 아파요.

지난 글에서 Golden Art Nouveau는 형광등 아래에서 셔플하면 빛 반사 때문에 눈이 따끔하다고 썼잖아요. 근데 Nefertari는 같은 환경에서 셔플해도 그게 훨씬 덜해요. 처음에는 이상하다 싶었는데, 카드를 자세히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금박 처리 방식이 달라요. Golden Art Nouveau는 매끈하고 광택이 강한 거울 같은 금박이라면, Nefertari는 살짝 매트하고 패턴이 들어간 금박이에요. 같은 “골드 포일”이라도 마감이 다른 거죠.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금박이 더 많은 Nefertari가 시각적으로는 더 차분해요. 이런 거 비교하면서 알게 되는 게 또 한 명의 카드 사용자로서 재밌는 부분이에요.

“이거 내가 잘못 다뤘나?” 하고 깜짝 놀란 일

사진의 카드 상자를 보면 저렇게 헤진 부분이 있죠. 처음에는 진짜 내가 뭘 잘못다뤘나, 아님 이게 잘 까지는 재질인가 했었어요. 그런데 모든 덱에 동일하게 저런 그림 스타일이 들어가 있더라구요!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꼭 적어두고 싶은 일화가 있어요. 제가 이 덱을 처음 받고 카드를 한 장 한 장 살펴보다가 그림에 헤진 부분처럼 보이는 자국이 군데군데 있는 걸 발견했어요. 하얗게 페인트가 벗겨진 것처럼 보이는 자국이에요. 처음엔 진짜로 띠용 했어요. “어머 내가 셔플하다가 흠집 낸 건가? 아니면 보관을 잘못한 건가?” 하면서 한참을 들여다봤거든요. 만져보기도 했어요. 까진 느낌은 아니고 매끈매끈 하더라고요.

알고보니, 그건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그린 부분이었어요. 고대 이집트의 진짜 벽화나 파피루스 그림은 수천 년이 지나면서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페인트가 떨어진 채로 발굴되잖아요. Silvana Alasia는 그 풍화된 느낌, 시간의 흔적을 카드 그림에 일부러 그려 넣은 거예요. “새 카드처럼 깔끔한 게 아니라, 천 년 묵은 유물처럼 보이게” 만든 거죠. 그런 부분들이 이 카드의 컨셉에 맞아서 더 찰떡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카드를 다시 보니까 그제야 그 자국들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흠집이 아니라 시간의 결이에요. 이 덱은 처음부터 “이미 천 년이 지난 카드”라는 컨셉으로 디자인된 거예요. 그걸 알고 나니까 카드가 더 좋아졌어요.

이집트에 끌리는 분들께

그래서 이 덱은 누구한테 추천할 수 있을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집트에 진심으로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후회 없는 선택이에요. 이집트 신화, 상형문자, 고대 벽화 양식에 끌리는 분이라면 이 덱은 단순한 타로 덱을 넘어서 작은 박물관처럼 작동해요. 한 장 한 장이 공부거리이자 감상 거리예요.

반대로 이집트에 특별히 관심이 없고 그냥 예뻐서 갖고 싶다면,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처럼 책장에 모셔두고 가끔 꺼내 보는 정도가 될 거예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저의 지인의 주 덱은 네페타리에요! 그냥 자기에게 맞으면 쓰면 될 것 같아요.

저는요? 저는 이 덱을 책장에 모셔두고 가끔 꺼내요. 자주는 못 써도 후회는 안 해요. 어떤 덱은 자주 잡아서 좋고, 어떤 덱은 그냥 내가 이 덱을 가지고 있다니!하는 만족감이 있어요ㅎㅎ Nefertari는 저한테 후자예요.

본 글은 제가 개인적으로 구입하고 소장 중인 덱에 대한 학습과 감상을 공유한 것이며, 특정 제품의 구매를 권유하거나 제휴 링크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덱에 대한 평가는 제 개인적 사용 환경과 학습 범위 내에서의 견해입니다. 본 글에 언급한 이집트 역사와 상징 관련 내용은 제 일반적 이해 수준의 설명이며, 해당 분야의 학술적 정의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정신 건강 서비스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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