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ing 카드 샀다가 주역까지 손 대버린 썰.

지난 글들에서 웨이트 계열 타로 덱이랑 입문 책 얘기를 했잖아요. 그 서양 쪽 세계에서 공부를 이어가던 중에, 어느 날 완전히 반대쪽이 궁금해졌어요. 동양의 카드. 그게 제 I-Ching 덱 이야기의 시작이에요.

어느 날 동양이 궁금해졌어요

타로를 20년 넘게 봐왔어도 공부할 건 끝이 없어요. 카발라, 점성학, 연금술, 신화, 수비학.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평생 공부거든요. 그래서 저는 “서양 상징 마스터”라는 말은 못 해요. 지금도 계속 새로 배우는 중이에요. 근데 그 세계 안에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 반대쪽이 궁금해지더라고요. 동양에도 비슷한 체계가 있을까? 있더라고요. 주역이요.

저는 주역이 단순히 점술서가 아니라는 점에 끌렸어요. 옛날 사람들이 우주의 이치를 설명하려고 만든 책이잖아요. 세상이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 변화는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지.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기호로 세상 전부를 64가지 괘에 담으려고 한 거예요. 삼천 년 전에요. 그 야심이 제 마음에 남았어요. 그 이치를 카드로 풀어낸 게 I-Ching 덱이었고, 저는 자연스럽게 그 카드에 손이 갔어요.

주역(周易)은 주나라 문왕과 그 아들 주공에게 저작이 귀속되는 책이에요. 64괘(卦, Hexagram)로 세상의 변화 원리를 풀어낸다고 알려져 있어요. 타로가 78장 카드로 인간 내면의 상징을 풀어낸다면, 주역은 64괘로 천지의 흐름을 읽어요. 출발점이 완전히 달라요.

저한테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었어요. 지난 글에서 융 얘기를 했잖아요. 융이 1949년에 리햐르트 빌헬름(Richard Wilhelm)의 영역본 주역에 직접 서문을 썼거든요. 융이 동시성(synchronicity) 개념을 설명할 때 주역을 예로 들기도 했고요. 타로 상징을 융의 원형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이라면, 주역은 언젠가 한 번은 건드리게 되는 텍스트예요.

제가 산 덱: Klaus Holitzka의 I-Ching

제가 산 건 독일 AGM Urania에서 나온 Klaus Holitzka의 I-Ching 카드예요. 1994년에 처음 발매된 덱이고, 64괘에 해당하는 64장 카드로 구성돼 있어요. 그림은 중국 수묵화 스타일에 금박을 살짝 얹어놨어요. 해설 booklet은 작가의 배우자인 Marlies Holitzka가 썼어요.

덱을 받았을 때 그림이 참 예뻤어요. 수묵화 특유의 여백, 산과 물이 스미듯 그려진 배경. 그런데 한 장 뽑아보는 순간부터 “이게 무슨 뜻이지?” 하고 머리가 하얘졌어요.

타로는 그림 자체가 말을 걸어와요. 웨이트 덱의 Death 카드에 해골 기사가 깃발을 들고 있으면, 변화나 종결이라는 이미지가 직관적으로 들어오잖아요. 근데 주역 카드는 달라요. 괘 하나가 여섯 개의 선(효, 爻)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조합마다 의미가 달라요. 그림은 힌트일 뿐이고, 진짜 해석은 괘의 구조와 괘사(卦辭), 효사(爻辭)에서 와요.

해설 booklet을 읽어봤는데, 괘 이름이 “건(乾)”, “곤(坤)”, “둔(屯)”, “몽(蒙)” 이런 식으로 쭉 나와요. 각 괘마다 “강건함의 원리”, “부드러움의 극치”, “처음의 어려움” 같은 설명이 붙어 있고요. 근데 이게 한 번 읽어서 이해되는 종류의 텍스트가 아니에요. 주역 자체의 세계관을 알아야 읽히는 책이더라고요.

주역 책 세 권과 EBS 강의

“해설서만 봐도 카드는 뽑힐 텐데 왜 굳이 원전까지 사냐”고 스스로한테 물어봤는데, 답이 나오더라고요. 타로 오래 한 사람의 직업병 같은 거예요. 덱 하나를 제대로 쓰려면 그 덱의 뿌리까지 파고 싶어지거든요. 웨이트 덱을 오래 쓰다가 결국 『타로의 그림열쇠』까지 산 것처럼요.

그래서 주역 책을 샀어요. 세 권이나요.

처음 산 건 강기진의 『주역 독해』였어요. 근데 이게 저한테는 너무 어려웠어요. 몇 장 못 넘기고 덮었어요. 너무 어려워서 책장 어딘가에 뒀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까 발견하지 못했어요. 너무 어려워서 깊숙한 곳에 넣어놨나봐요. 아무튼 그래서 김석진의 『새로 쓴 대산주역강의』를 샀어요. 대산 김석진 선생님은 1928년생으로 주역의 대가로 알려지신 분이에요. 1999년 한길사에서 처음 낸 『대산주역강의』가 주역 열풍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그 책을 2019년에 제자들이랑 같이 손봐서 『새로 쓴 대산주역강의』로 대유학당에서 전 3권으로 다시 냈어요. 깊이 있고 체계적이에요. 그래도 초보한테는 여전히 벽이 있긴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대원의 『주역 강의』. 솔직히 지금 초보한테 주역 책 하나 추천하라고 하면 저는 이 책을 권해요. 설명이 친절하고 읽기 수월하거든요. 제가 강기진 → 김석진 → 서대원 순서로 가면서 “아 주역 입문은 서대원 책이 먼저였어야 했구나” 싶었어요. 순서를 잘못 탔던 거죠.

책만으로 부족해서 강의까지 찾아들었어요. EBS 클래스-e(classe.ebs.co.kr)에 주역 강의가 몇 개 있는데, 저는 성태용 교수님이랑 김동완 선생님 강의를 봤어요. 성태용 교수님은 건국대 철학과 명예교수로 동양철학 권위자세요. 강의 톤이 담백하면서도 깊어요. 김동완 선생님 강의는 좀 더 실용적인 쪽이고요.

솔직히 말할게요. 책 세 권에 강의까지 들었는데도 아직 미로 속에 있는 기분이에요. 괘 하나에 담긴 의미가 중의적이고, 동양 철학 특유의 모호함이 있어요. 서양 상징 체계처럼 “A는 B를 의미한다” 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거든요. “이 괘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읽히지만,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읽힐 수 있다”는 식으로 맥락에 따라 의미가 계속 움직여요. 이게 주역의 본질인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아직 멀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좀 웃긴(?)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주역 한창 공부할 때 비오는 날 우산 쓰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떤 분이 우산 안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더니 자기가 공부하는 사람이라는거에요. 그래서 무슨 공부를 하냐고 되물었죠. 그런데 주역공부를 한다는거에요. 그래서 저는 ‘오? 이 사람이랑 말하면 주역에 대해서 더 알 수 있나? 나 요즘 주역 공부하는데 이게 무슨 인연이지’ 싶어서 따라갔어요. 따라간 것도 제가 바보였죠.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들으려면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니 저에게 음료수를 사게 했어요ㅋㅋㅠ. 근데 이야기가 슬슬 조상이 어쩌고 하는 쪽으로 흘러가더라고요. 네. 도쟁이였어요. 아…하고 안녕히 계세요 하고 튀어나왔습니다^^ 공부한다고 접근해오는 분 조심하세요.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지금도 I-Ching 덱은 제 책장에 있어요. 자주 뽑지는 않아요. 상담할 때는 여전히 웨이트 덱이 주력이고, 주역은 아직 제 상담에 녹여내지 못했어요. 공부할 게 너무 많이 남아 있거든요. 아직 저한테 이 덱은 “언젠가 제대로 읽고 싶은 덱”이지, “지금 상담에 쓰는 덱”은 아니에요.

그래도 샀던 건 후회 안 해요. 윔지컬 덱을 샀던 그 학생이랑 비슷한 마음이에요. 그때의 저는 동양 쪽이 궁금했고, 그걸 실제로 따라가 봤으니까요. 책장에 주역 책 세 권이랑 I-Ching 덱이 꽂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부의 방향이 하나 서 있는 느낌이에요. 언젠가 이 덱이 제 손에 제대로 들어오는 날이 오겠죠. 그때는 또 다른 글을 써볼게요.

본 글은 개인적인 타로/주역 경험과 해석을 공유한 것이며, 절대적 예언이나 전문 상담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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